가로등, 옥수수, 트룽, 전기도면, 자동차 핸들, 겨울 산, 코일, 운동화, 버스…. 이것은 일터와 집을 오가며 틈틈이 만든 기억의 재료이자, 편집되어 사라질뻔한 기억의 장면들이다. 뿌리 없이 자유롭게 떠다니며 어느새 한데 뭉친 이 실타래들로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짓겠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눈이 떠지듯 하필 가로로 갈라진 검정 화면이 위아래로 열리면 당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장면이 있다. 이미지가 옆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속도로 보아하니 차 안에서 창밖을 찍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에 탑승한 듯하다. 지나가는 것은 한적한 읍면 지역에서 볼 법한 장면이다. 컨테이너가 있고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공장 단지 옆으로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장면이 신호를 받고 잠시 멈추자 이제서야 풍경을 응시할 시간이 생긴다.
이곳은 화성, 평택, 수원, 안산 등이 위치한 경기 남부 지역 어딘가의 도로이다. 수도권과 지방을 남북으로 연결하고 서남쪽으로는 항구와 밀접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예전부터 많은 산업 단지들이 자리 잡으며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해왔다. 제조업 중에서도 기계 금속 공장, 전기전자 부품 공장이 많은 이곳에는 한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주로 아시아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산다. 화성에 거주하며 제조업 현장의 사운드와 화물 운송업의 속도감, 기계의 리듬감으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텍스트들을 리서치해온 김양우 작가의 시야에도 점차 멀리서 온 사람들이 가까이에 보였다. 서울과 화성을 오가는 통근 생활 속에서, 일상과도 같은 공장 단지 안에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누구보다 늦게 잠드는 사람들이었다. 깨어있을 때도 꿈을 꾸는 사람들, 수천 킬로미터 거리의 떠난 곳과 도착한 곳 사이에서 두 나라의 언어로 편지를 쓰는 사람들. 집과 집 사이를 걷는 사람들이 틈틈이 자신만의 페이지를 두껍게 써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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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성시 팔탄면 노하리 공장 일대의 풍경이 흐른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용접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던 차미카라는 도보와 자전거,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며 왕복 6시간 거리의 학원과 공장 기숙사를 이동해 용접 자격증과 한국어 자격증을 땄다. 주중에는 가로등을 만들고 주말에는 수원 이주민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나면 긴 일주일이 끝나고 다시 월요일이 시작된다. 인도 바다의 눈물 같은 섬 스리랑카에서는 일을 안 해도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었다. 일 년 내내 항상 28도에서 32도 사이를 유지하는 따뜻한 고향 날씨가 가끔 생각난다. 이제 곧 한국은 겨울이다.
분체도장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아카나인의 목소리를 따라 나란히 레일에 걸린 부품들이 천천히 흘러간다. 그는 주말에 초급반 한국어 선생님으로 동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한국에서 일하며 생각한 건 조건이 안 맞을 때 일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폐병이 있는 사람은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허리가 아프면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 지내다 보면 가끔 고향인 미얀마에서 키우던 고양이, 강아지, 나무가 생각난다. 요즘 미얀마 상황이 좋지 않아서 섭섭하다.
9년 전 서저나 약소는 네팔에서 4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한국에 도착해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경기도 화성, 오산, 안산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하거나 한국어를 배운다.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점수를 채워야 하는데 나이와 월급, 학력, 한국어 공부, 봉사활동 중에서 노력해서 채울 수 있는 건 한국어 공부와 봉사활동밖에 없다. 머무르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네팔에 있는 아이들은 점점 커간다. 그녀가 아들에게 네팔어로 편지를 쓴다.
풍경 보는 걸 좋아하는 캠라는 캄보디아에서 한국에 들어온 지 8년이 되었다. 한국어는 어려운데 반말, 사투리로 말하면 더 알아듣기 어렵다. 자동차 핸들 회사의 조립 파트에서 일하는데 8시에서 8시까지 서서 일하고 주말에도 일한다. 관두는 사람들이 많지만 캠라는 캄보디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길 것도 생각하며 일한다. 어릴 적 캄보디아에서 11명 대가족이 모여 살던 기억이 날 때가 있다. 낚시를 해서 잡은 걸로 함께 밥을 먹던 나날들이었다.
띵담느흐엉이 결혼 비자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겨울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한국어책을 읽고 한국 드라마의 자막을 보며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가끔 버스에서 안내음을 잘못 들어 한 정거장을 미리 내렸던 적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신이 느꼈던 답답함을 아이가 베트남에서 친척과 가족을 만날 때 똑같이 느끼지 않길 바란다. 아이는 그래서 한국어도 배우고 베트남어도 배운다. 지금은 자동차 기구들을 아래에서 받쳐주는 부품을 만든다. 가끔 기계음 너머로 맑게 두드리는 베트남 전통 악기 트룽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네팔에서 한국에 온 지 8년 차인 디팍 반자라는 프레스 공장에서 일한다. 자동차 부품 만드는 일을 처음 배웠을 때는 몸무게가 49kg이었다. 그때는 탕탕 기계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5-6년 전에는 일주일마다 2명씩은 네팔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아쉽다는 이야기만 할 뿐 어떻게 하면 죽음을 줄일 수 있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줄이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줄일 수 없다고 생각을 하기보다는 계속 이런 활동을 할 것이다. 높은 산 위에서 화성시를 내려다보면 바람 소리가 크고 차다.
웅엔딩팅은 수원 고색단지의 자동차 검사 장비 제작 회사에서 일한다. 한국에 오고 가족과 떨어져 사느라 딸이 태어나는 순간은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한국으로 와서 행복하다. 체류 연장을 하려면 점수가 충분해야 하기에 틈을 내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에게 집은 쉴 수 있고 행복함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이사를 여러 번 했지만, 베트남에서는 태어난 곳에서 집을 거의 옮기지 않는다. 하노이 근처의 고향에 가면 항상 그 자리에 집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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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풍경과 목소리를 따라가며 받아 적는 이야기들이 총 176분짜리 영화의 시놉시스처럼 이어진다. 분명 이야기는 다시 쓰고 다시 읽고 다시 듣는 여정 속에서만 찰나의 뿌리를 갖게 될 것이다. <이주 이야기 프로젝트 migration stories project>는 경기 남부 지역에서 살아가는 꽤 멀리서 이곳까지 온 사람들의 기억 속을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나요?” “당신은 어떤 일을 하나요?” “당신은 어떤 집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대답하는 이의 방향으로 함께 탑승한 각각의 영상 속에는 일터와 집을 오가는 풍경들, 기억에 형상을 만드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리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불투명한 회색 물체들이 있다. 3d 이미지로 재연되어 목소리 뒤로 천천히 흘러가는 회색 물체들은 일터에서 손을 움직여 만들어낸 사물들이자 집을 상상하며 기억 속에서 만들어낸 사물들의 풍경이다. 그것은 빼곡하게 채워진 24시간 속에서 스스로 자라난 이야기의 재료들이기도 했다.
이주하는 몸은 기존 시공간에서 멀어지는 동안 완전히 이탈되기보다는 연장되고 지연되는 시간을 경험한다. 마음과 몸이 서로 다른 곳에 있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 속에 특정한 기억이 머물러 있기도 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분열되는 감각은 언어에도 생긴다. “사실 어느 나라 말을 처음에 누가 잘 알겠어요. 그죠?” 어디선가 차미카라 씨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태어난 곳의 언어와 이주한 곳의 언어 사이에서 만들어진 목소리는 모국어와 한국어라는 각각 두 개의 자막으로 나란히 흐르며 온전히 번역되지 않는 말들을 남겨둔다. 빠르게 습득한 타지의 언어로는 집과 집 사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에 어떤 이야기들은 기꺼이 자유롭게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 이야기들은 정거장처럼 자리 잡은 전시장에서 관객을 기다리며 일정한 시간에 재생된다. 가끔 시간표가 맞지 않는 버스처럼, 이야기가 관객을, 관객이 이야기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이야기를 기다리는 길목에는 집을 떠올리며 만들어낸 조명 <당신의 집을 떠올려 보세요>가 깜빡인다. 각각의 스크린 속에서 개별적인 목소리의 공간을 점유한 이야기들은 이후 <집으로 가는 길>을 따라 웹 공간으로 이동해 하나의 ‘홈'페이지가 된다. 이제 어떤 기억의 이미지에 마음이 끌려 어떤 이의 영화를 보게 될지는 접속한 관객의 손과 눈에 달려있다. 클릭하고 스크롤 할 때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상영되거나 재상영된다. 그렇게 집과 집 사이에서 계속 걸어갈 이들의 페이지를 모을 집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주 이야기 프로젝트>는 이름처럼 프로젝트의 형식을 지향하고 있다. 전시나 공연과 같은 형식이 아닌 프로젝트의 관점에서 예술을 수행한다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고, 미학적 완결성이 아닌 존재의 변화에 초점을 두는 것일 수 있다. 리서치하고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만들고 보고 듣는 전 과정에서 프로젝트에 포함된 존재들이 변화한다. 스크린 속에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현실 속에서 이동하고 움직이는,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태도는 영화의 매체론적인 입장과도 결을 같이 한다. 영사기에서 무언가를 앞에 비춘다는 project의 어원 속에는 정지된 것을 움직이고 지나간 것을 되돌리는 행위가 어딘가로 나아가기 위해 앞길을 밝히는 행위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니 디팍의 영상에서 우리는 반딧불의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주 이야기 프로젝트는 디팍의 목소리에서 ‘반딧불 봉사단’이라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네팔은 아직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이 많기에 화성에서 일하는 네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함께 네팔의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매달 돈을 보낸다. 이제 하나의 프로젝트가 또 다른 프로젝트를 비춘다. 주어진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싶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집과 집 사이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김양우 개인전 <이주이야기프로젝트>(2022) 비평글
‘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는 ‘어눌한’ 한국어가 아니다. 외국어와 모국어 사이에서 만들어진 ‘사이-언어’ 같은 것으로 봐야 한다. 그 언어를 과연 ‘어떻게 듣고 받아적을 것인가’ 라는 고민은 많은 질문을 함축하며 영상을 보게 했다. 들리는 말과 보이는 글자(자막)가 다르다. 교정할 것인가, 부분 수정할 것인가, 그대로 적을 것인가, 맞춤법만 고칠 것인가... 이 질문들은 ‘누구’를 기준으로 언어를 표기하는가의 문제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