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도 퀴어 ‘있음’
코비드19로 퀴어 관련 행사들이 잠시 멈췄던 작년(2020)은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연결되어있다’ 라는 선언들이 다르게 들리던 해이기도 했다. 줄줄이 취소되는 축제와 함께 많은 모임과 행사들이 비대면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온라인 기술 인프라는 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다양한 조건과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러 장벽을 만든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러한 기술과 자본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서울과 도시 집중적인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었기에, 웹상의 연결만으로는 역시 대면 만남의 충분한 연결감각이나 온기를 확보하기엔 아직 어렵거나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화 <섬, 퀴어, 복희>(김성은, 배꽃나래, 2020)는 제주퀴어축제마저 취소된 시기의 제주, 인프라가 불안정하고 퀴어 커뮤니티도 약한 강정 마을에서 ‘혼퀴’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를 질문한다.1
나를 퀴어로 봐주는 사람 없이도 내가 퀴어로 존재할 수 있을까? “퀴어적인 장소나 공동체가 없는 시골 퀴어는 어떻게 자신의 퀴어성을 지켜나갈까?”2 시골과 퀴어를 연결하는 이 영화는 퀴어와 공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사유하게 한다. 영화에서 카메라가 복희를 따라다니며 비추는 공간들은 강정 마을의 귤밭(복희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춤출 수 있는 장소), 복희가 아마 혼자 살아가는 집, 매일 하루 일과처럼 ‘일상투쟁’이라 불리는 시위가 이루어지는 해군기지 앞, 그리고 낭만적인 퀴어로맨스를 꿈꾸는 장소로서의 바닷가이다. 이 공간들에는 대부분 복희 이외의 사람이 보이지 않고, 등장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 역시 복희와 무관하거나(해군기지 앞에서 절하는 일에 집중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 혹은 비현실적으로(복희의 상상 속 애인) 재현된다. 혐오와 적대적인 사람들이 사라진 가상의 공간처럼 보이는 다큐 속 강정의 이면에는 ‘이상한거 자꾸 하는’ 외부인은 나가라고 강정지킴이들을 압박하는 제주의 적나라한 현실이 있다.3 하지만 강정이 시골이라는 점에서 가능한 고립성은 ‘내가 잘 다니는 길’, ‘나만 아는 길’로만 다니면 그런 풍경들을 안 볼 수 있는 하루를 만들기도 하기에 영화가 현실을 삭제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장르로 설정되어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시골이라는 장소가 퀴어 활동가에게 소외와 고립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도시와는 달리 자신을 분류하고 평가하려는 수많은 시선들로부터는 자유롭다는 점에서 ‘편안한’ 장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4 시골이라는 장소의 이중성에 대한 경험적 통찰 위에서 이 다큐는 강정에서 반군사기지운동, 평화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퀴어의 하루,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낮 시공간을 보여주며 익명성과 외로움, 자유로움이 혼재하는 시골 퀴어의 일상성을 가시화한다.
퀴어와 공간이 맺는 관계가 서울과 멀리 떨어진 제주라는 섬에 위치한 ‘시골’ 강정에서 환경운동과 평화운동이 펼쳐지는 해군기지 주변의 인적 드문 장소들을 무대로 한다는 점은 이 영화의 흥미로운 설정이다. 현실을 그대로 혹은 전부 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제시하고 싶은 주관적 장면들을 선택해서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이라면, 그리고 혐오는 어디에나 있고 시골도 결코 도시보다 안전하지 않지만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가공해나가는 삶이 만들어갈 가능성을 믿는다면, 이 영화가 제시하는 ‘시골에도 퀴어 있음’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퀴어 공동체가 없는 시골 퀴어는 어떻게 자신이 퀴어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시골과 도시의 도식적인 이분법을 넘어 시골의 고립성이 지닌 이중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퀴어와 시골이 맺는 관계는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까? 퀴어 운동과 반군사주의, 평화주의 운동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이 세 질문은 개인의 정체성, 자기표현, 장소의 의미, 공동체, 다중쟁점 정치에 대한 고민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퀴어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은 <섬, 퀴어, 복희>인데 영어 제목은 <Some queer bo-ki>이다. 한글 음차 표기같기도 하지만 ‘섬에 사는’ 퀴어 복희라는 의미와 ‘어떤’ 퀴어 복희 라는 의미를 둘다 갖는다. ‘어떤’이라는 단어가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일부의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진다는 점을 염두해둔다면, ‘어떤 퀴어'라는 말은 ‘일반’ 사람들 속에서 ‘퀴어’를 지칭하는 의미보다는 ‘퀴어’라고 상상되는 집합 속에서 또 다시 분류되는 어떤 ‘퀴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는 영화에서 자신의 퀴어성을 진단하는 복희의 모습과 겹친다. 복희는 나는 얼마만큼 퀴어적인지, 나는 어떤 퀴어인지 고민한다. 영화에서 복희는 먼저 ‘퀴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특성’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의 퀴어. 공감에 취약하여 전형적인 연애관계에서 요구되는 정서적 교감에 자신이 없기 때문. 둘째, 성적 지향과 로맨틱 지향이 드물게 작동하는 퀴어(그레이). 성욕이 배란기 즈음 잠시 일어나지만 사람을 상대로 강한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고, 욕구가 크지 않음. 셋째, 성별과 인격에 상관없이 취향의 몸, 외형에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퀴어. 이러한 특성들은 얼핏 ‘퀴어성이 약하다'는 지표로 보이기도 함.”5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있음에도 연애를 하지 않기에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나 그것을 확인할 기회가 생기지 않는 이러한 세가지 특성은 마치 이유이자 결과처럼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퀴어이든 아니든 연애상대로 곤란한 특성’과 만난다.
첫째, “연애 상대로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 행색의 퀴어. 노푸. 샴푸 사용을 안하고 물로만 머리를 감는다. 가끔 머리 기름기가 과하면 비누로 감을 때도 있음. 셀프 헤어 커팅. 바리깡으로 마구 자른 야생적 헤어스타일. 낡고 삭은 옷. 사기보다 얻거나 구해입는 스타일. 노브라. 온몸의 털 방치”, 둘째, “번듯한 직업이 없어 반려로서 안정감을 줄 수 없는 퀴어. 자기한몸 건사하기 빠듯함.”6 이 두가지 특성은 퀴어라는 정체성과 상관없이 전형적인 연애 상대로서 매력이 부족하다고 인식되는 이미지들인데 한편으로는 클리셰적으로 재현되는 퀴어의 이미지와 거리가 먼, 일면 꾸밈이나 자기표현이 거의 없는 퀴어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의 복희에게 해당되는 다섯가지 특성들은 퀴어 커뮤니티 안밖에서 퀴어로 인지되지 않는 특성이며 바깥으로 잘 재현이 되지 않기에 스스로 ‘퀴어인가?’라는 질문을 내면에서만 반복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반드시 튀거나 화려하거나 저항적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정체성의 표현으로 인지될 수 있을까?’ 복희는 스스로를 퀴어라고 느끼는 순간에 대해 “이성애자들의 문화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와 다르다고 느낄 때, 동성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이성 사람에게 별 정서적 감흥이 없을 때, 자넬 모네 뮤직비디오 보면서 신나고 행복할 때”라고 대답한다.7 모호하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느낌'으로 분명히 형성되고 있는 ‘어떤' 퀴어 정체성의 인지 방식이다. 루인은 트랜스젠더퀴어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에서 “타인의 승인을 얻지 못한 정체성은 잘못된 정체성인가?”라고 질문한 바 있다.8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퀴어 이미지의 클리셰대로 이미지화하지 않은 사람들을 의심하는 퀴어 커뮤니티 내의 시선들과, 평소에 퀴어적 정체성으로 꾸미지 않고 다니면 이성애적 규범 안에서 퀴어로 인지되지 않는 일상의 시선들과, 비규범적으로 자기표현을 한다해도 내가 원하는 정체성으로 나를 해석할 인지력이 부족한 일상의 시선들의 교차 속에서 특정 정체성은 존재함에도 계속해서 비가시화된다. ‘무엇다움’은 내가 나를 표현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내 표현을 해석하는 방식, 사회적인 상징과 미디어가 재현으로 만들어내는 해석의 체계들 속에서 복잡하게 경합하고 그 인식의 범위가 확장, 축소되는 힘겨루기를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케이트 본스타인이 말한 정체성과 연극의 비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케이트 본스타인은 “연극을 정체성의 연행(performance)”으로 보며, “정체성의 연행(performance)이 공연으로 인지된 것이 연극”이라고 말한다.9 일상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드러낼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인지되려면 그것을 ‘공연'으로 파악할 만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즉 다르다고 독해할 수 있는 인식이 없다면 비규범성은 인식될 수 없다.
그렇다면 복희가 살아가는 시골처럼 나를 해석하고 규범적/비규범적으로 인식하는 시선들이 최소화되거나 거의 없는 장소에서 타인의 승인이나 거부 없이도 자신의 ‘퀴어 정체성'이 존재한다고 스스로 믿을 수 있을까? 반드시 나의 퀴어성을 확인해주는 존재가 있어야 내 퀴어 정체성이 유지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거울처럼 자신을 반영하고 자신이 투영할만한 퀴어 동료, 애인이 없을 때 나의 존재는 가시화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때 이 영화에서 복희가 퀴어력 자기 진단을 하는 동안 방에 있는 여러 소지품들을 천천히 보여주는 장면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방 안에는 퀴어이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작업자,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소품들이 눈에 띈다. 평화 운동, 반군사주의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복희의 퀴어 정체성은 벗어놓은 옷들처럼 자기 표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10 방 안에 세워진 시위 소품들과 악기, ‘우리는 퀴어하게 오래오래’라는 타이틀의 전시 포스터, 작업과 생활 루틴을 맞추려고 붙여놓은 “통제력 유지”라는 문구 등. 그것은 강정에 퀴어 공동체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평화 운동, 반군사기지운동, 환경운동을 이어가는 공동체에도 복희가 속해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그렇게 다른 공동체와의 연결 속에서 퀴어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질문들이 유지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차이들 속에서 상호의존할 수 있어야만 “혼돈 가득한 지식 속으로 안전하게 내려갔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정한 비전을 가지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오드리 로드의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11 이 장면은 퀴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만 완성되거나 해결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며 몸의 확장으로서의 방, 방 밖의 친구들과의 연대, 다른 운동과의 접점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들이 지지해주는 연대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퀴어와 공간 : 시골과 도시의 이분법 다시보기
복희는 해군기지 깃발이 잘 보이는 집 주변 귤밭에서 체조를 하고 춤을 추고, 집에서 자신의 퀴어정체성을 자가진단한 뒤, 해군기지 앞까지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이동한다. 이미 그 앞에는 종교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12 이 장면은 강정에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풍경이다. 제주 해군 기지 반대 운동은 해군 기지가 건설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매일 오전 7시에 생명평화 백배로 아침을 열고 오전 11시에는 가톨릭 미사가, 미사 뒤에는 인간띠잇기와 강정마약 댄스 반주에 맞춰 춤을 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기에 ‘일상 투쟁’이라고 불린다. 강정은 당사자성이 사라진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있다는 점에서 어떤 공동체 운동의 2차전, 혹은 2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에 대해 최혜영은 “투쟁의 시기에 따라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 일상투쟁을 이어가는 목적 등 다양하게 목적이 변화되어 왔다. 기본적으로는 참여자 개인에 따라 행위의 본질이 직접행동, 퍼포먼스, 종교 활동, 건강증진을 위한 운동 등으로 다 다르며 이 다름이 같은 시간에 교차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13 복희는 해군기지 앞에서 종교단체들이 절을 하는 그 뒤에서 요가를 하며 연인과의 바닷가에서의 데이트를 상상한다. 마치 잡념을 떨치려고 하는 수련처럼 보이는 이 요가동작 속에 끼워진 연애에 대한 상상은 현장의 경직된 분위기에 균열을 내며 퀴어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 밖의 다른 운동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위와 운동이 투쟁이자 일상적 일과이자 습관이자 자기 표현의 장으로 섞이고 있는 이러한 강정의 해군기지 주변의 모습은 정형화된 시위 장소의 모습을 띄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행동이든 어떤 모습이든 입장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이 영화는 운동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이제 당신들 필요없으니 외지인은 나가라고 할 때, 그곳에 내가 머무를 이유를 찾는 활동가들의 하루를 복희의 시점으로 일부 보여주고 있다.
루인은 영화 <불온한 당신>을 분석하며 퀴어가 공간과 맺는 관계에서 시골과 도시의 이분법적 도식이 도시를 기준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히며 그 속에서 퀴어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필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흔히 도시는 익명성이 강하고 퀴어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있고 개방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퀴어 우호적이고 시골은 폐쇄적, 보수적이기에 퀴어에게 불편한 공간이라고 재현되는 인식 방식을 재고찰하자는 것이다.14 도시 안에서의 혐오나 비가시화, 시골에서의 친밀감과 고립의 편안함은 뒤바뀌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퀴어와 공간이 갖는 관계는 더 복잡하게 사고하고 분석되어야 한다. 이는 일라이 클레어가 <망명과 자긍심>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의 퀴어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던 순간과 다시 계급적인 자신의 퀴어성이 도시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양쪽에서 느낀 상실감을 말한 지점과 연결된다. 익명성과 고립, 안전은 복잡하게 맞물려있다. 클레어는 책에서 수잰 파(Suzanne Pharr)의 말을 인용한다. “뿌리를 떠나 도시에서 살거나, 시골 공동체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비가시화된 삶을 살거나, 또는 가시화됨으로써 주변화되고 고립되고 위험에 처하거나. 이 선택지 중 어느 것도 온전함 또는 자유를 약속해주지 않는다.”15 이와 같은 맥락에서 디디에 에리봉 또한 “게이나 퀴어의 삶을 특징짓는 것은 차라리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 하나의 시간성에서 또 다른 시간성으로 (비정상의 세계에서 정상의 세계로, 또 그 반대로) 계속해서 옮겨갈 수 있는 능력-혹은 그래야 할 필요성-일 터이다.” 라고 말한다.16 흥미롭게도 일라이 클레어와 디디에 에리봉 모두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찾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장소와 계급 안에 얽힌 소외감을 발견하며 다시 자신이 성장한 장소에서 상실한 것을 찾아 시골로 돌아가는 귀환 서사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도시와 시골이 공허한 상상적 이미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 무엇이 있고 누가 있고 어떤 공동체가 있는지가 그곳을 살 곳으로 만들고 내가 머무를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교집합을 넘어
복희는 자신이 꿈꾸는 ‘퀴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좀 다른 움직임으로 사는 사람. 속도가 다르다든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기대되는 사회인보다 다른 흐름이나 그런걸 가지고 사는 사람들, 밖으로 표현하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 그게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퀴어였으면 좋겠어. 이런 것들이 퀴어라고 했을 때 하나로, 한가지의 모양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17 복희의 하루는 ‘혼퀴의 삶’이면서 혼자 하는 싸움이면서 공동체를 찾아가는 긴 여정같다. 이때 영화가 보여주는 퀴어운동과 반군사주의운동의 장에서 가능한 연대와 동료의식은 ‘정체성과 폭력’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기에 합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집합 없이도 확장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공유하는 것, 공통의 것에 대한 고민은 단지 교집합으로 마주하는 것들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서로 다른 정체성과 계급, 인종과 종교를 넘나들며 가능한 돌봄과도 관계 있다.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에 대해 기술에서 친족단위의 돌봄의 한계를 말하는데 이때 더글라스 크림프의 ‘난잡한 돌봄’ 개념을 가져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크림프는 ‘난잡하다' 라는 개념을 가볍거나 진정성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보다 “게이들이 서로에 대해 친밀감과 돌봄을 나누는 방법을 다양화하고 실험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18 난잡한 돌봄은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가장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증식해가는 윤리 원칙”이며 더 많이, 현재의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차별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다.19 다시 말해 반드시 나와 가까운, 나와 같은 종의, 혹은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범주에서 이탈하여, 마음이 가는 곳, 나를 부르는 곳에서 다시 나를 발견하고 내가 무엇과 연결되어있는지 성찰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복희는 상상 속 연인과의 데이트를 꿈꾼다. 그런데 그 배경도 분홍색 필터를 입힌 제주의 바다이다. 환경 운동이 만나고자 하는 세상, 퀴어 운동이 유토피아라고 상상하는 풍경, 반군사주의 운동이 지키고자 하는 장소가 제주 강정 바다로 ‘난잡하게’ 수렴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바다가 미래에 이미 도달한 장소인 것처럼 기억하게 하는 이 장면을 아마 오래 고민하게 될 것같다.
[각주]
1. 서울독립영화제 GV에서 감독의 말을 인용하였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c0dbiz-RE5Q)
2. 서울독립영화제 영화 설명글은 다음과 같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에 사는 복희는 혼자 퀴어다. 퀴어 공동체를 꿈꾸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올해는 제주퀴어문화축제도 열리지 않고 데이트 어플을 켜도 죄다 아는 사람들뿐이다. 밖으로 나간 복희를 반기는 건 귤나무와 새소리 뿐. ‘혼자 퀴어, 혼퀴는 과연 가능할까?’ 퀴어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골 퀴어 복희의 로망 달성 프로젝트!”
(링크 : http://www.siff.kr/siff/program/mov_view.php?mov_idx=2305&fes_idx=39)
3. 김국상은 제주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강정 지킴이들을 향한 제주 사람들의 배제와 적대의 시선을 ‘외부'와 ‘내부'라는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비판하고 있다. 공유재를 지키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김국상,「이른바 ‘외부세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헤드라인 제주』, 2011.7.22).
4. 지난 여름 이 영상 작업에 등장하는 강정마을에서 보낸 하루는 복희의 낮시간을 일부 상상해볼 수 있는 기억을 남겼다. 짧은 9분짜리 단편 영화에서 유머러스함과 정치성, 외로움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사유하며 분석의 필요성을 느낀 건 필자가 이 공간에서 만난 활동가, 예술가 동료들과의 환대의 시공간 속에 아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약간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시골과 퀴어의 관계에 ‘편안함’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그곳에서의 편안했던 경험에 기반한 필자의 해석이다.
5. 영화에서 복희의 대사 인용
6. 위와 같음
7. 위와 같음
8. 루인, <비규범성은 인식될 수 있을까?>, 『보스토크18호』, 보스토크프레스, 74p.
9. “우리는 항상 정체성을 연행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의식하면서 정체성을 연행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인지할 경우, 그게 바로 연극이다. 그 공연 기술을 다른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볼 만큼 연마하는 경우, 이 기술자들은 배우나 공연자나 연극예술인이라 불리고 입장료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조은혜 역, 바다출판사, 2015, 234p.)
10. 이 부분은 다큐멘터리 <퀴어의 방>(권아람, 2018)을 생각나게 한다. 별다를게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클로즈업 되는 사물들은 말하는 이의 생각을 부연설명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나의 욕망과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몸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11.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 ・ 박미선 역, 후마니타스, 2018, 177p.
12. 종교시위에서는 슬픈 음악과 함께 다음과 같은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 종교는 이웃 종교에 의지하여 활동하는 종교 공동체임을 마음에 새기며 서른세번째 절을 올립니다. 우리 마을은 이웃 마을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고향 공동체임을 마음에 새기며 서른네번째 절을 올립니다. 우리 가족은 이웃 가족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임을 마음에 새기며 서른다섯번째 절을 올립니다.” 이 소리에 맞춰서 복희는 건강을 위한 요가를 한다. 퀴어공동체가 없는 강정에서 살아가는 복희에게는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 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릴 것이다.
13. 최혜영, 「사회운동 참여와 정치의식의 성장: 강정지킴이 체험과 생태, 평화, 여성의 가치」,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2021년 2월.
14. 루인, 「퀴어와 공간의 관계 재구성 - 영화 <불온한 당신>(이영, 2015)의 바지씨 이묵을 통해 한국이라는 공간의 이성애 규범성과 도시-촌락 이분법 탐문하기」, 『공간과사회』63, 2018, 194-226.
15.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전혜은・제이 역, 현실문화, 2020, 106p.
16.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되돌아가다』,이상길 역, 문학과 지성사, 2021, 244-245p.
17. 영화에서 복희의 대사 인용
18. 더케어컬렉티브, 『돌봄선언』,정소영 역, 니케북스, 2021, 82p.
19. 위와 같음
<섬, 퀴어, 복희>(2020) 리뷰
“바다는 고요한 모래밭 너머에, 사지를 뻗고 누워 있었다...... . 살아있는 몸처럼 누워 있었다.”(<야생의 심장 가까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민승남 역, 55p)
주아나가 바닷가를 걸어갈 때, 사방에서 “아니! 아니!”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과 모래, 나무, 빛 모든 것이 외치는 것을 주아나는 듣는다. 포르투갈어에서 드물게 남성형, 여성형으로 나눠지지 않는 단어가 ‘아니'를 뜻하는 nunc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