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장면


<멀리서 머무르는 마음>은 2022년 9월 제주 강정의 전시공간미음에서 열리고 닫힌 전시이다. 로힝야 난민들이 살고 있는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의 삶을 전해듣고  수년째 진행중인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애도하며 그곳의 삶을 기록한 사진들로 페이퍼 시어터를 만들었다.

시간에 쫓기며 겨우 이틀 만에 만든 전시를 회상하는 일은 부채감과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불러낸다. 분명 그것은 애도하는 마음으로 쓴 편지였다고 생각하지만, 메시지를 보낸 발신자로부터 받은 것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부채감과, 전시를 통해 메시지를 받을 또 다른 수신자에게 언뜻 알아볼 수 없게 휘갈겨 쓴 편지를 보낸 건 아닌가 하는 부채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진행중인 폭력을 생각하며 디디 위베르만과 같은 미학자의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린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어딘가 부족한 만듦새로 급히 열고 닫았다는 사실이 남기는 부끄러움인 것이다. 속보처럼 전해 받는 메시지로 속보 같은 전시를 만들 때 휘발되고야 마는 미감을 목격하며 이런 내용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는가, 아니 왜 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들이 지나간 시간 속에 굳어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진을 오리고 붙이는 데 사용했던 접착제처럼 말라붙어 있다. 값싼 종이에 흑백으로 인쇄한 뒤 거칠게 색칠한 조금은 엉성한 페이퍼 시어터가 어떤 편지를 남겼는가 라는 질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이 전시를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망설임 없이 제대로 설명해 본 적이 없다. 부채감과 부끄러움에 의심과 망설임이 더해지면서 전시의 기억 주변에서는 말과 글이 사라져갔고 관련된 이미지들은 금세 잊혀 갔다. 빠르게 노출되지만 빠르게 사라지는 이미지들을 목격했다. 하지만 잘라낸 사진을 일부 담아 전시가 된 하나의 장면이 그것을 찍은 사진으로 남아 여전히 나를 응시한다.

그러니까 기억 속에서 아마도 그날 나는 이미지는 만질 수 없지만 사진은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난민캠프를 오가는 이들이 믿음과 신뢰 속에서 보내준 사진들을 만지작거리던 시간과, 사진을 자르고 다시 붙여서 페이퍼 시어터를 만들자고 결정한 시간 사이에 어떤 대화들이 오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물과 전기가 부족한 캠프에서 전시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생각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 전시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상자 하나에 담아서 보낼 수 있는 전시란 무엇일까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자른다는 건, 잘라도 되는 형태와 자르면 안 되는 형태를 구분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한 무리의 소년들을 오려내면 뒤에 있던 수레의 바퀴가 잘려 나갔고, 지나가던 닭을 오려내면 닭이 밟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여성을 오려내려면 뒤에 따라오는 한 무리의 가족들을 반으로 나누어야 하고, 빨래가 널린 어느 집의 마당을 오려내려면 옆집의 지붕을 세로로 잘라내야 했다. 사진을 오리고 또 오려내면서 바닥에 떨어지는 이미지들과 다시 붙여야 할 이미지들이 자꾸 섞여들어갔다. 버리려고 모아둔 종이 쪼가리들이 끈적한 손끝에 자꾸만 달라붙었다.

잘려진 전시, 잘려진 영화, 잘려진 생각, 잘려진 글자들은 어디로 갈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을 갈무리할 길이 없는 전시를 기록한 사진들을 한 장씩 다시 이어 붙여보며, 자르고 다시 붙이지 못한 문장들을 그러모은다. 잘려진 시간, 잘려진 삶 뒤에 붙지 못한 것이 여전히 남겨 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다음 장면에 대해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멈춰있는 영화를 보고 있다
멈춘 지 오래된 이 영화를 이제 사진으로 부르자고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언젠가 움직일 테니 여전히 영화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음 장면을 기다리며
극장에 남아있는 관객들은
지루함과 호기심 속에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고
자꾸만 바깥에서 불빛을 몸에 묻히고 들어온다
다른 영화의 불빛, 스크린 바깥의 불빛이
의도치 않게 어둠을 밀어내고

누군가는 버려진 것으로 극장을 만들고 있다
어딘가에서 주워 온 종이상자로 작은 무대를 세우고 조각난 스크린을 끼우고
형체 없는 풍경과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를 상영한다
관객들은 주위를 밝히는 희미한 불빛을 끄지 않고
스크린 바깥에서 흘러들어오는 소리를 막지 않고
다음 장면을 기다리며
영화 같지 않은 영화로 시간을 채우며
멈춘 영화가 다시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점차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들어오는
객석 곳곳에 흩어진 자그마한 종이 쪼가리들
의자마다 끈적하게 말라붙은 고체 풀
차가운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진 가짜 식물들
기둥만 남은 집
반으로 조각난 하늘
계절을 알 수 없는 나무
구겨진 종이 새
잠든 관객
그리고




<그는 정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전시/더미북 텍스트
기획: 이하림
참여작가: 양은경, 오빛나, 이유니, 이하림, 전솔비, 정지영
디자인: 정지영
협력기획: LBDF
후원: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시작공간 일부
*
전시 이후의 마음
*
연대와 사회적 예술의 의미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지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주제가 맞아 떨어지는 형식,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 과정 안에 연대도 있고 참여도 있다. 사회적 예술, 예술적 실천이라고 수렴되는 작업들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 다음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위치도 필요한 것이다.




*
전시 이후의 마음
*
연대와 사회적 예술의 의미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지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주제가 맞아 떨어지는 형식,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 과정 안에 연대도 있고 참여도 있다. 사회적 예술, 예술적 실천이라고 수렴되는 작업들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 다음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위치도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