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사운드 커뮤니티]는 청취 매체의 근원적 속성에서부터 취약성에 관한 사유를 재발견하며, 온전치 않고 완벽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증언, 기억, 아픈 몸, 아카이브, 대피소-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행위의 조건이자 동력이 되는 순간을 탐구한다. 그것은 매체의 작동 원리 안에서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둘러싼 철학적 사유를 작동시키고 동시대의 여러 상황 위에서 사유의 모양을 조금씩 변형시켜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동시대성으로 우리는 난민 캠프를 작업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그곳은 와이파이 인터넷이 차단되고 전파가 안정적이지 않으며 전기 또한 간헐적으로 흐르는 곳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와 공동체가 무너진 자리에서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산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여러 신체적, 정신적 부상 속에서 회복해 가는 수많은 몸이 있다. 먼지와 모래에 취약한 기계들이 알 수 없는 작동과 오작동, 정지를 반복하는 것이 일상인 곳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바깥을 향해 발신되었지만 그중 일부만 수신되고 다시 그중 일부만 응답해 온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취약성으로 묘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장소와 몸, 기계, 정동의 상호연결성을 찾는 본 프로젝트는 연결이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 그 자체로 연대의 몸짓이 되는 커뮤니티의 함의를 찾고자 한다.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는 홍수에 침수된 난민 캠프의 바닥에 묻힌 듯, 눈물에 잠긴 듯, 빗물에 고인 듯, 오래된 기억 속에 잠긴 듯 멈춘 축음기, 라디오, 오르골을 작동시키며 시작한다.
축음기
한국에서 3,800km 남짓 떨어진 방글라데시의 도시 콕스바자르. 인천 공항에서 태국 방콕까지 5시간, 다시 방글라데시 다카까지 3시간, 국내선을 갈아타고 다시 콕스바자르까지 1시간. 대기 시간과 환승 시간을 포함하면 하루를 넘는 여정을 거쳐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콕스바자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자연 해변의 절경으로도 유명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캠프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콕스바자르 시내에서 다시 차를 타고 2시간을 이동하면 100만 명이 넘는 로힝야 (Rohingya)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난민 캠프가 나타난다. 난민이 아닌 외부인은 캠프 패스라는 까다로운 출입증을 발급받고 나서야 겨우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캠프 내에 머무를 수 있다. 축음기 페이지는 콕스바자르 시내에서 난민캠프를 여러 번 오가는 여정 속에서 녹음 버튼을 눌렀던 순간의 흔적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지리적인 흔적이기도 하다. 콕스바자르 시내의 숙소 오션프렌드(Ocean friend)에서 들리던 일상의 소리, 그곳에서 출발해 혼잡한 도로를 달려 캠프에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들리던 소리, 수많은 캠프 중에서도 따뜻하게 환대받았던 캠프 14를 걸어가는 길에 들리던 소리, 캠프를 경계 짓는 철조망 바깥에서 우연한 만남의 소리, 로힝야 여성들의 심리 회복을 위해 만들어진 평화의 집 샨티카나(Shanti Kana)에서 들리던 배움과 회복의 소리. 난민캠프의 바깥에서 중심까지 곳곳에서 녹음된 소리들은 축음기 페이지 안에 분명히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삶의 편린들을 기록으로 저장하며, 저장된 것을 실재로 만드는 기록 매체의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에디슨(Thomas Edison)이 반쯤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상태로 포노그래프(Phonograph)라는 소리 기록장치를 실험하고 발명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신체적 결함이 기계적 사운드 기록의 출발점”에 있었다고 말한다.1 신체적 결함, 기억이라는 불완전함을 보충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필터 없이 그 자체로 기록하는 기계가 발명되었다. 그리고 그 기계가 결함의 범주를 확장한다. 키틀러의 말처럼 스스로 말한 것을 듣고 스스로 쓴 것을 보며 자의식을 만들어 내던 인간의 피드백 루프가 기계의 개입으로 인해 분리되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소음들이 틈입해 오는 것이다. 그렇게 축음기는 과거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것들을 ‘듣게 된다’는 사실까지 열어낸다. 기록된 소리는 삭제되거나 지울 수 없는 수많은 소음들의 실재 또한 그 자체로 증거하고 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체감온도 39도의 길 위에서, 위험한 장소에서 어지러운 몸과 뜨겁게 가열된 녹음기로 급하게 켜고 끄기를 반복하며 모은 소리들은 선명한 얼굴과 풍경, 분명하게 파악되는 이야기만 전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이크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 잘 안 들리는 상태로 스쳐지 나가는 누군가의 이야기, 병아리와 오리의 말, 번역기가 인지하지 못하는 소수 언어인 로힝야(Rohingya) 사람들의 목소리도 남기고 있다. 마치 소리의 잔상처럼 어지럽고 불확실하며 어수선하고 불완전하다. 누군가에게는 거슬리는 소음이거나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잡음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계속 듣고 싶고 끝내 그리워지는 소리, 이제부터 찾아가야 할 신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축음기 페이지는 이렇듯 기억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기억이 되며 뒤엉키는 소리의 홈들을 보여준다.
라디오
뉴스와 세계기상정보서비스(World Weather Information Service), 그리고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채널 라디오 나프(Radio naf)2를 통해서 로힝야 난민 캠프에 언제 비가 오고, 언제 흐리고, 언제 태풍이 지나가고, 또 언제 가장 더운지, 멀리서 사는 친구의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찾아보는 일. 김양우는 2021년부터 로힝야 난민 캠프 주변의 날씨를 기록해 왔다. 매일 규칙적으로 기록한 건 아니지만, 바쁜 삶 속에서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모은 다분히 일상적인 기록들이다. 날씨로 느슨하게 연결된 로힝야에 대한 관심은 점차 구름이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의 규모로 난민 캠프 주변을 이동하는지에 대한 지식으로 축적되고, 더 나아가 바람이 재난이자 파괴의 동인일 뿐만 아니라 미디어이자 에너지의 동력으로서 가능한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기 공급이 불안정하고 대부분 태양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캠프의 상황에 맞게 캠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동력 라디오를 구상하는 여정과 교차되어 갔다. 많은 난민 캠프들은 통신이 통제되어 있기 때문에 캠프 내에서 외부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렵고 외부와 소통하는 것이 많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 캠프는 지형적으로 경사가 심하고 언덕이 많아서 송신율이 낮은 환경이다. 그뿐만 아니라 캠프 내에서 라디오를 구하기도 어렵고 빼앗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보통 NGO 단체들이 공유하는 라디오를 통해, shongjog3 같은 미디어 플랫폼에서 파일을 다운받아 청취하거나, 캠프 내의 정보 센터에서 제공하는 소식을 듣거나,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한 소수의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다운받아 캠프 내 청취자 그룹과 공유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라디오 페이지는 이렇듯 너무나 제한되고 불안정한 난민 캠프 안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고려하며 그곳에서의 대안적인 청취 매체를 고민하며 출발했다.
그런데 리서치를 진행하며 점차 우리는 캠프 내의 전기 사용에는 항상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난민 캠프에서는 전선이 노출된 경우가 많고 마감이 되지 않은 채로 덮개가 열린 기계들도 많아서 어디에서 어디로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가는지 다 볼 수 있었다. 전기가 흐르는 길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캠프 내 거주 공간은 항상 숨 막힐 듯 덥기에 전기가 생기면 일단 선풍기를 돌리는 데 먼저 쓰고, 남는 건 낮에도 어두운 실내의 조명을 켜는 데 쓴다. 전기로 만들어 내야 하는 바람과 빛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여유가 있다면 다른 기계를 충전했다. 캠프에 보내고 싶은 라디오에 대한 구상은 캠프 내에서 청취 매체의 필요성과 조건을 살피며 작업의 문제의식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정보 하나를 받을 수 있는 에너지로 시원한 바람을 만들 수 있다면 라디오는 다른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이 기꺼이 도구화될 수 있다면 아마도 그런 순간일 것이다. 바람으로 만드는 라디오, 그리고 다시 바람을 만드는 라디오에 대한 구상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김양우는 이제 방대한 범주의 네트워크를 통해 로힝야 난민캠프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며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구름 아래에서 구름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의식한다. ‘구름은 미디어다’ 존 더럼 피터스(John Durham Peters)는 미디어가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것이라고 하며, 낮은 층위에서부터 미디어에 대한 사유를 재고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미디어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인프라로 재사유하며 자연을 분석하는 그의 논지는 청취 매체의 존재 이유를 윤리적 차원에서 재고하게 하는 이 프로젝트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렇다면 분명 ‘바람은 미디어다’4 김양우는 데이터화되지 않는 정보와 삶의 순간들이 바람을 통해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지 그 경로를 탐구하고, 그곳에 시원한 바람을 보내는 방법까지 고민한다. 이때 바람은 이동 경로이자 이동의 형식, 수단이고 동력이자 보내고 싶은 내용 그 자체이다. 라디오 페이지에서는 재난으로서의 바람을 어떻게 삶의 조건이기도 하며 에너지이자 소리의 경로로 재사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여정이 흐른다.
오르골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취약성에 대한 사유에서 중요한 것은 신체를 명백하게 취약하고 비활성화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 틀린 생각인 만큼이나 신체가 명백하게 능동적, 활동적이라는 생각도 틀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5 취약성은 반드시 상처받을 가능성과만 연결되는 게 아니며,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반응성은 모두 취약성의 기능이자 효과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을까.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 프로젝트는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발표의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2022년의 공연, 2020~2021년의 워크숍, 2020년의 출판, 2019년의 모임, 그리고 그 이전의 크고 작은 여러 만남과 얽혀있다. 그 여정 속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또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2019년 로힝야 사람들의 마을이 불타고 있는 영상을 나에게 전달해 준 그 사람도 그 이전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받은 어떤 이미지, 텍스트에 빚지고 있을 것이다.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청자가 된 순간, 목격자와 증인이 된 순간을 기억하며 여기까지 이어져 온 작업이다. 하지만 이 여정이 확신과 결단만으로 채워진 시간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득하게 멀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아우슈비츠의 그림자가 지구 반대편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진행중인 죽음이 있다는 사실은 그것에 대해 글을 쓰고 예술 작업을 하는 이곳의 우리를 자주 무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운동의 방향에는 여러 갈래가 있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것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무력감이나 자기합리화의 의심을 사라지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예술은 무용하지 않지만, 무용할 수도 있다는 의심과 경계 속에서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 있다. 제노사이드의 이야기를 듣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향해, 그리고 그 생각으로부터 반대 방향을 향해 도망치고 되돌아온 시간이 우리의 뒤에 남겨져 있다.
오르골 페이지는 이렇듯 기록하는 자의 연약한 마음을 고백하듯 드러내며, 아카이브의 성격(불완전함, 유실 가능성, 망가짐)과 취약한 몸(상처, 트라우마, 장애, 돌봄이 필요한 몸)의 유사성을 찾아가는 자리이다. 오로민경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리운 감정을 환기시키는 악기이자, 수동으로 손잡이를 돌려서 그 힘으로 구멍이 뚫린 악보와 접촉해 소리를 만들어 내는 매체인 오르골을 살핀다. 오르골은 우리가 어딘가를 향해 움직인다면, 그 움직임의 모습 안에 어떤 멈춤의 순간들이 가려져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매체이다. 오로민경은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물체에 상을 맺히게 하는 구멍, 난민 캠프의 벽에 뚫린 구멍, 빛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바람이 들어오기도 하고 때로는 비가 새기도 하는 구멍, 하지만 악보에서는 음악을 만드는 소리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 구멍의 은유로 길게 이어지는 편지를 써나간다. 어쩌면 난민 캠프의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에 분명 작은 구멍들을 무수히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상 안에서 문득 떠오르는 타인의 삶이라는 공허한 구멍뿐만 아니라, 나의 신체가 외부를 향해 취약하게 열려있다는 것에 의존하는 구멍일 수 있다. 구멍 속에는 어두움도 있지만 빛도 있다. 캠프 14 안에는 인권평화단체 ‘아디(ADI, Asian Dignity Initiative)’에서 만든 샨티카나라는 힐링센터가 있다. 그곳에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몸에 지닌 여성들이 심리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영어를 배우며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써보고 무너진 커뮤니티를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 성장하고 있었다. 대나무로 만든 성긴 벽 사이에 생긴 작은 구멍들로 따뜻한 빛과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공간에서 바닥에 누워 여성들과 온기를 나누던 순간을 기억한다. 한국에 돌아온 뒤 오로민경은 그곳에서 배운 다시 살아내는 숨을 이곳의 취약한 몸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악보를 만들었다. 세로로 흘러가는 오르골 악보 위로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국경 근처에서 주워 온 쓰레기들이 누워 있다. 소리를 품은 구멍 위에 누운 작게 찢어진 몸들을 만지면, 한국과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사이에서 진동하고 일렁이는 기억의 푸티지들이 나타난다. 실제로 치유와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만든 음악과 편지, 그곳에서 본 풍경, 캠프 안의 소리, 기억과 잔상이 이어진다. 오르골의 다른 이름은 음악상자(music box)이다. 전기와 빛이 항상 부족한 난민 캠프에 보내고 싶은 소리가 있었다. 전기와 빛이 없어도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구상하며 만든 악보와 사물들이 선물 상자에 담겨 떠날 채비를 한다.
소리 응시
본 프로젝트는 소리를 통해서 난민 캠프의 시간을 만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관객들을 우선으로 하는 작업으로만 흘러가지 않기 위해선 소리 기억이 다른 형태의 기억으로도 변형되어야만 했다.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 웹사이트 곳곳에 위치한 소리 해설 텍스트와 음성 해설, 그리고 수어 영상과 스피커 해설 음성은 서로 다른 몸들을 횡단하며 스스로 모습을 바꾸는 기억이다. 소리로 난민캠프와 접촉할 수 없는 몸들, 혹은 소리를 따라갈 안내가 필요한 몸들, 소리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한 몸들은 웹사이트의 여러 틈에서 제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기억을 만난다. 보는 사람, 듣는 사람, 보고 듣는 사람, 보지 않고 듣는 사람, 듣지 않고 보는 사람, 서로 다른 몸들이 마주하는 기억은 어떤 모양으로 서로를 응시할까. 청인 관객을 위한 소리 해설과 농인 관객을 위한 소리 해설이 만나는 지점에서 함께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기기 위해 텍스트는 기록을 설명하는 부분에 치중하기보다 기록 당시의 기억을 묘사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 속에서 만들어진 사운드 다큐멘터리 <소리 응시>는 더 잘 보고 들을 수 있기 위해 닫힌 영화이다. 화면에서 이미지는 사라졌고, 자막 텍스트는 화면 바깥에 있으며, 자막 텍스트인 줄 알았던 것이 소리 해설이자 소리 묘사로 그리고 기억의 환기로 읽힌다. 콕스바자르 시내에서 머물렀던 호텔과 로힝야 난민 캠프를 왕복하는 기억들이 소리를 보낸다. 호텔 창밖의 빗소리를 듣다가 캠프 안에서 세차게 비가 내리는 장면으로 전환되면, 내 방 어딘가에서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의 잡음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캠프에서 들리던 새소리가 호텔에서 들리던 새소리에 응답하고, 박자를 맞춰 캠프를 걸어가는 발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면 누군가 저 멀리서 나타날 것만 같다. 다시 듣는 행위가 똑같은 의미를 전달하지 않듯, 번역 또한 의미를 일부 유실시키거나 생산해 낸다. 변형되는 나의 기억들은 타인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질 위험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우리의 기억에 더 가깝게 데려갈지도 모른다. 이렇듯 소리의 유실 가능성, 기억의 변형 가능성, 감각하는 몸의 취약성은 이야기의 제약이 아니라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이곳에 더 많은 소리 잔상을 불러낼 것이다.
1. Kittler, F. (2016) Grammophon, Film, Typewriter. 유현주, 김남시 (역) (2019) <축음기, 영화, 타자기>, 서울: 문학과지성사, 52p.
2. 라디오 나프 웹사이트: https://www.radionaf.com/
3. shonjog 웹사이트: http://www.shongjog.org.bd/
4. Peters, J. D. (2016) The Marvelous Clouds. 이희은 (역) (2018) <자연과 미디어>, 서울: 컬처룩, 343p.
5. Butler, J. (2015) Notes Toward a Performative Theory of Assembly. 김응산, 양효실 (역) (2020)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서울: 창비, 184p.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
▲ 기획 : 전솔비
◉ 연출/창작 : 김양우, 오로민경, 전솔비
▣ 스피커해설, 접근성자문 : 박하늘
☞ 수어영상 : 신선아
◑ 디자인 : 김보라
◐ 웹개발 : 비엔피알
∀ 번역 : 장한길
▨ 도움 : 차광수, 파티마
▩ 후원 :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지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협력 : 사단법인 아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