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아이 티, 더블 에스 유 이 슈, 티, 슈, 티슈.”
문해교육 시간이 되면 샨티카나의 트레이닝 룸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모인 서른 명 남짓한 로힝야 아푸들과 수용공동체에서 찾아온 몇몇 방글라데시 여성들로 북적거린다. 이들이 배우는 단어는 주로 일상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다. 오늘의 칠판에는 facial tissue, hand towel tissue, toilet tissue, 이렇게 세 단어가 적혀 있다. 며칠 전에 배운 tissue에서 더 나아가 용도에 따라 세분화된 화장지의 종류를 배우는 날이다. 얼굴을 닦는 고급 화장지, 손을 닦는 화장지, 화장실에서 쓰는 화장지. 사실 ‘화장지’ 라는 단어만 알아도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생긴 화장지마다 각각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비슷하게 생긴 얼굴들에도 각기 다른 이름이 있듯이 가리키는 것마다 이름이 있고 자신이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아푸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티 오 아이 토이, 엘 이 티 렛, 토이렛, 티 아이 티, 더블 에스 유 이 슈, 티슈, 토이렛 티슈.” 문해교육 선생님인 방글라데시 직원 지니아가 영단어 발음을 음절 단위로 잘라서 하나씩 천천히 알려준다. t와 i가 붙으면 ‘티’, s 두 개와 u, e 가 붙으면 ‘슈’, 그래서 ‘티슈’. 각기 다른 목소리가 함께 크게 티슈를 외친다. “티슈”, “티이슈우”, “티슈우”, “팃슈”, “티슈우우”… 지니아는 눈썰미 좋은 선생님이어서 뒷줄에서 웅얼웅얼 대충 따라하는 사람이 보이면 일어나 혼자 읽어보게 하고 잘 하지 못하면 앞줄로 이동시켰다. “티 아이 티이, 더블 에스 유 이… 스으…”
일어선 누군가가 읽다가 뜸을 들이자 어디선가 참지 못하고 “슈!”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니아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살짝 눈을 흘기고 여기저기선 킥킥대는 웃음 소리가 튀어나온다. 어떤 아푸는 자신이 먼저 손들고 일어나 선생님이 가르쳐준 발음 그대로 빠르고 완벽하게 읽은 뒤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기도 한다.
그리고 맨 뒷줄에는 갓난아기를 안은 아푸들이 앉아 있다. 태어난 지 일 년 남짓 되어 보이는 아기들은 알파벳을 읽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어 있다. 가끔 깨서 울고 모유로 배를 채우고 다시 선풍기 바람에 잠들기를 반복한다. 한 손에는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는 부채질을 하고 두 눈으로는 공책과 칠판을 번갈아 보며 입을 움직이는 제일 바쁜 학생들이 맨 뒷줄에 있다. 지니아는 잘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뒤쪽으로 적절히 섞어 보내며 모두가 단어를 습득할 수 있게 한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며, 앞 사람을 눈치껏 따라 읽으며, 열정적인 학생들은 새로운 단어를 오늘 세 개나 배우고 있다. 페이셔 티슈! 핸드 타워 티슈! 토이렛 티슈!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캠프 안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관심 있게 관찰했던 것 중 하나가 캠프14의 여성들이 ‘읽고 쓰기’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여성의 비문해율이 90퍼센트에 달하는 로힝야 언어 문화가 난민 캠프라는 환경을 거치며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캠프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줄곧 ‘목소리 없는’,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로힝야 여성들을 호명해온 나의 글들이 다시 내게 묻고 있었다. 이들이 읽고 쓸 수 있게 되어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세계가 다가온다면, 그래서 내가 쓴 문장들이 의미 없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글의 궁극적인 의미이자 몫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다른 이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에 대한 그간의 부채감, 부담감, 아쉬움 등이 그곳에 가면 조금 덜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걸음을 목격하면서,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의 세계를 충실히 기록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 혼자 쓰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로힝야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쓸 것이고 나는 그녀들이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의 시간을 충실히 기록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샨티카나에서 다른 활동을 하다가도 트레이닝 룸에서 알파벳 읽는 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하고 가만히 글 읽는 소리를 듣곤 했다. 캠프는 닭이 우는 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발소리와 슬리퍼 끄는 소리, 어딘가에서 집을 고치는 망치질 소리와 새의 울음 소리, 그리고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바람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다양한 생의 외침이 밀도 높게 쌓여가는 캠프 안에서 에이치 더블유 오, 하우, 에이 알 이, 아, 와이 오 유, 유, 하와유 하우 아 유, 하와유, 같은 아푸들의 발음 소리는 유난히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중략)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 공선주(별빛) 오로민경 이승지(비바) 이유경 전솔비 공저, 파시클,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