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실의 세계


‘세계’라는 단어는 마치 거대한 모습을 지니는 것 같지만 일상 속에선 줄곧 ‘나’라는 말과 어울려 지극히 사적인 범주로 수렴하곤 한다. ‘나’의 몸을 거울 삼아 비추는 곳, ‘나’에 의해 분절되고 결합되는 이미지들의 조합, ‘나’를 둘러싼 문제계. 이처럼 ‘나의 세계’ 속에 거주하는 인간은 주관과 직관을 사용해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파악하며 이로 인해 ‘경험’이라는 것 또한 극히 우연적인 시공간의 마주침으로 귀결된다. 일부만을 지각해서 알아낸 일정 범위 내의 세계가 각자의 실재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알 수 있는 것과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어떤 곳을 향해 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각자가 감각하는 세계가 어느 하나의 공통된 이미지를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불확실하며 개별적일 도착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각자가 발딛고 살아가는 세계의 실재에 가까울 것이다. 세.계. 이와 혀가 살짝 닿을 때 공기를 아주 조금 내쉬면서 발음되는 이 단어는 짧은 호흡과 함께 가볍고 힘없이 일상 속으로 빠져나간다.

나의 세계라는 말을 다시 1인실의 세계라는 공간 속에 놓아본다. 더 작고 은밀하게 들린다. 글을 쓰는 지금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공기가 생각의 흐름을 끊고 더운 몸 속을 지나 머릿속의 내면까지 침투해오고 있다. 잠시 생각을 흘려보내니 몸은 이미 더위가 식은 밤공기 속으로 가있고 남미 어딘가에 있을법한 오래된 호텔 침대에 누워있다. 천장에는 먼지 쌓인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고, 거울로 비치는 테이블과 의자 등의 소품들은 단 한 명의 사용자를 고려해 최소한의 동선으로 이루어진 이 방을 구성한다. 한쪽 벽면에 난 커다란 창이 밤이 만드는 불빛과 바깥의 소음을 커튼 사이로 반사하고 있다. 같은 모습의 공간 속 각기 다른 호실에 머물며 내밀한 시간을 채워가고 있을 투숙객들의 모습을 벽 너머로 떠올려 본다. 타인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노크 후의 긴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 끝에 잠시 흘깃 엿볼 수는 있을 것이다. 타인의 1인실.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세계 속에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개인이 감각하는 세계의 크기는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여러 겹의 막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각기 다른 막 안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감각하고 이해하며 지각하는 공간의 범주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들은 각기 다른 개인의 공간 지각 능력과 방법론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것들로 세계를 가늠한다. 기후나 날씨라고 불리는 대기의 느낌이나, 공간을 탐구하고 공간을 이해하기 위한 신체의 움직임, 소리, 매체적인 면에서의 확장, 인간의 언어 밖의 세계들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압축된 일상성을 낯설게 재현하는 이러한 방식들은 부재하는 곳을 설명하려는 시도와도 비슷할 정도로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감각하는 얇은 막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모호하고도 부정확하며 불확실하게 반복된다.

자연도 도시도 기후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만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나만의 방식이 만들어진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특정 예술 매체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다음 단계에 대한 상상은 자신이 선택한 매체의 세계를 탐구하는 움직임과도 같다. 피부에 닿는 대기의 온도와 습도 등 촉각적으로 감각하는 세계의 느낌에 대한 예민한 자각과 그것을 소리와 색채로 표현하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하려는 또 다른 움직임이며 인간의 언어 밖의 세계에 대한 질문과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의 시도, 공간과 몸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움직임일 것이다. 압축된 세계의 일상성을 낯설게 재현하는 이러한 움직임들은 아직 우연이 발생하지 않아서 적절한 시공간에 등장하지 못한 1인실의 사물들이다. 서로 다른 1인실의 세계들을 전시장 안에 접어두었다. 펼치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을 접어둔 1인실의 세계.

짐 자무시의 영화에 등장하는 호텔방의 습습한 공기, 크리스 마커의 영상 속에 끊어진 시간의 망을 수선하는 고양이 인형,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안으로 굳게 잠긴 문고리가 나의 1인실의 세계에 들어갈 소품들이 된다.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세계 世界라는 말이 있다. 중학생 무렵까지 나는 세계라는 건 휴대폰의 전파가 닿는 곳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어느 장면 속에 적어둔다.

전시 <1인실의 세계>(2018) 서문
기획: 전솔비
협력: 김민관
작가: 강은구, 김지연, 신현정, 정찬민, 허윤경, SaC(안민욱, 이세승)
전시장소: 갤러리175 
주최: 갤러리175
후원: 분홍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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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 혹은 기획의 글 안에서 하나의 이미지 혹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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