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습을 사이에 둔 편지


안녕하세요, 지연 님. 산책하듯 함께 써보자는 초대의 말을 들으니 예전에 거북골근린공원으로 걸어가는 여정과 공원 안에서의 산책을 스트리밍하시던 날 저를 초대해주셨던 게 기억나네요.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핸드폰을 사용해, 새벽 5시 즈음 그곳을 이동하면서 채취한 소리를 전송하는 작업이었지요. 그날 새벽잠을 이기지 못해 함께 듣는 순간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다음날인가 지연 님이 보내주신 녹음 파일을 통해 시공간적으로 딜레이된 자리에서, 이미 지나간 산책길을 되짚어 갔었어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바람 소리, 이파리가 몸에 스치는 소리, 흙을 밟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가만히 새벽 공기를 상상하며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제 머릿속에 그날 지연 님이 눈과 귀로 담아온 소리 이미지들이 잔상으로 남아 있어요. 수십 년이 지나고 만약 제가 그 공원이 있는 산에 찾아갈 일이 있다면 예전에 분명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고 착각할 것 같기도 하네요. 착각을 진짜라고 믿게 될 만큼 기억력이 나빠져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진짜가 아닌 기억은 무엇이고 진짜 기억은 어디에 있을까요. 끊임없이 보고 듣고 잊어버리는 세계에서 진짜 기억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의심해보게 됩니다. 누군가가 건네준 기억의 일부가 제게 씨앗처럼 이식되어 자라나고 번져 나가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룬다면 그 기억의 기원을 과연 찾아갈 수 있을까요. 분갈이하듯이 그렇게 이동한 기억 이미지들이 실제 기억을 물들이고 덧입히는 과정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같기도 하네요.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항상 촬영과 편집을 하고 있고, 그렇다면 만들어진 영화들보다 잊히고 사라지는 영화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사라짐으로 완성되는 게 영화라면’이라는 지연 님의 시 구절을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는 지연 님이 과거에 뒷산을 걸으며 주로 ‘눈’과 ‘귀’로 기억한 것들을 다시 ‘손’이 연기하며 생성하는 이중의 기억인 것 같기도 해요. 그때의 몸과 지금의 몸 모두 지연 님의 몸이지만 눈이 경험한 것을 손이 이어받아 현재화하고 있는 것이고, 그 모습 속에는 손의 무의식적 기억도 들어 있겠지요. 손이 카메라 앞에 전면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은 마치 무언가를 만지고 만들고 싶은 마음이, 파괴와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불가능한 순간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사라지는 손, 춤추는 손,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 따뜻한 손, 깃털같이 가벼운 손, 깃털이 되는 손은 역시나 같은 손이기도 한 파괴하는 손, 부수는 손, 망가뜨리는 손, 터트리는 손과 멀어지고자 여정을 떠나는 것 같았어요. 손바닥에 깃털을 태우고 날아가듯 움직이는 손의 장면에서 저는 새의 몸과 인간의 몸이 무해하게 만나는 순간을 상상합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서로를 만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사유의 단계를 넘어 수행되는 순간. 신체의 일부이자 과거의 신체로, 생명의 흔적으로, 새의 기억 조각으로 남은 깃털을 만나는 순간. 저는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손의 여정에 대해 다음 편지에서 조금 더 나눠보겠습니다.  (2021. 10. 22 솔비)

(중략)

*이 책은 <스크리닝 프로젝트 : 이야기꾼>(2021.8.3-8.7,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에서 상영된 김지연 작가의 영상 작품 <생명연습(Practice of Life)>과 연계하여 제작되었다. 작가는 영상 작업을 보지 않은 독자를 생각하며 이미지와 텍스트로써 책 속에 영상을 다시 상영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생명연습>의 제작과정을 회고하며 동료와 나눈 교환서신, 작업을 예고하듯 지난 겨울과 봄에 뒷산에서 쓴 시, 워크숍의 기록을 재구성한 텍스트와 참여자들에게 보냈던 글, 그간의 듣는 작업을 돌아보며 쓴 스크립트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연습>(2022)
글: 김지연, 전솔비
편집: 김지연, 전솔비
편집 자문 및 교정 교열: 희음
제작지원: 우란문화재단
(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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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매체를 종이 매체로 번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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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면 안에 있는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를 어떻게 종이 위에 펼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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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혼자서는 풀리지 않던 생각의 고리가 열리고, 사유가 나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신의 운동으로서의 대화인 것이지, 편지체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대화상대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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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매체를 종이 매체로 번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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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면 안에 있는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를 어떻게 종이 위에 펼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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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대화를 하다보면 혼자서는 풀리지 않던 생각의 고리가 열리고, 사유가 나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신의 운동으로서의 대화인 것이지, 편지체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대화상대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