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잠




예루살렘으로 떠난 친구가 보내온 메일에는 두 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성지와 올드 시티를 여행 중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어둠 속에 이어지는 촛불들의 이미지. 보자마자 무언가를 애도하는 듯한 일렁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그것이 생일 케이크 같다는 말을 남겼다. 애도와 축하가 이어진 자리를 그녀는 안다.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의 그림자를 보는 눈.

그리고 또 다른 사진, 거기선 우선 짙은 어둠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돌로 된 바닥 위에 얹은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죽음의 장소에 자신을 맞닿은 채로 먼 곳의 오래된 온기를, 혹은 아직 도착 중일 메시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땅 위에 손바닥을 대고 뭐라도 느껴보려는 마음. 그것은 과거와 맞닿은 오래된 흙과 먼지, 그리고 숨이 깃든 공기가 자신 곁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벅찬 누군가의 떨림이었다.

아무것도 없기에 오히려 가득 찬 곳, 아무것도 없기에 어떤 것도 있을 수 있는 곳, 아무것도 없기에 누구든 머무를 수 있는 곳. 되돌아오는 발걸음, 반복하는 손짓, 잇따른 탄식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곳. 정말 보이냐고, 들리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 곳. 그녀가 내게 보낸 건 함부로 무언가를 없다고 말하지 않는 풍경들이었다.



사라진 곳, 사라지는 곳에서의 만남.



“바다를 흔히 인류의 고향이라 여기듯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회귀 의식으로써 좁은 이 땅에서 한평생 보내셨지만 이제서야 넓은 푸른 바다에서 맘껏 활보하시게 바다 장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장례 전문기업의 광고 문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부표가 있는 곳에 유골 가루를 뿌리는 것을 바다장(海洋葬)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바다장이 정식 장례로 인정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인천과 부산에서만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90퍼센트 이상의 바다장이 인천에서 이루어진다. 바다장에서는 부표가 바다 위에서 작별한 장소를 표시하는 산소(山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바다에서 작별 인사를 한 사람들은 재회를 위해 다시 바다를 찾을 수밖에 없다. 기일이나 명절이 되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천 연안부두 선착장에서는 정시마다 배가 뜨고 있다.

그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지 않던 날이었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채우다가 국화꽃을 한 송이 들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티켓에는 금어호에 탑승하라고 적혀있었다. 바다에서 돌아오고 있는 화려한 배 한 척이 보였다.



“금어호는 얼굴은 호랑이, 몸은 물고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보면 범고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호랑이와 물고기를 함께 형상화한 모양이 어째서 범고래가 되는 건지, 죽은 이를 만나러 가는 탈것이 너무 화려한 건 아닌지 의심하다가 가마를 탄다고 생각하며 배에 올랐다. 커다란 금빛 가마는 부두 근처 바다로 천천히 나아갔다.



이층으로 된 금어호는 좌석이 있는 실내에서 유리창으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실내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테라스처럼 난간이 있는 복도가 이어지고 난간 아래 발밑으로는 바다를, 머리 위로는 바로 하늘을 마주할 수 있었다. 19번, 21번, 23번. 홀수 번호의 부표로만 운행하는 금어호는 부표에 도착할 때마다 멈췄다. 번호가 호명되면 이곳에서 상을 치른 이들이 준비해온 음식과 술을 들고 난간으로 나갔다. 식혜, 사이다, 사과, 배, 사탕 … 사람들이 음식과 술을 바다에 뿌리며 헤어진 이들을 그리워할 동안 배는 부표 주위를 몇 바퀴 돌며 시간을 채웠다. 그곳에 있던, 있는, 있을 누군가에게 그동안 잘 지냈냐며 안부를 묻고 나는 잘 지냈다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 허공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다. 누군가는 너무 일찍 헤어져서 할 말이 많았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이 장면을 어딘가에서 본 적 있다. <태양없이>(크리스 마커, 1983)의 도입부. 생각에 잠긴 듯, 꿈결 속을 헤매며 잠든 신체들을 찍는 카메라의 시선. 



난간에 기대어 발아래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큰한 막걸리 냄새가 풍겨왔다. 바다로 뿌려지는 여러 종류의 술들이 만드는 물거품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밀려오는 게 보였다. 뿌옇게 퍼져나가며 점차 사라지는 거품을 바라보며 이곳이 새삼 물 위라는 것을 떠올렸다.


좌표상으로는 이곳이 과거의 그곳과 같지만 그 위의 모든 것들이 변한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걸까. 단단한 땅속이 아닌 흔들리고 흘러가는 물 위가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물은 흐르고 시간이 흘러간 만큼 이곳에 흘린 누군가의 잔해는 더 먼 길을 갔을 텐데. 그래도 여전히 이곳이 그리움의 장소가 되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여기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그/녀도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되돌아오는 걸음이 양방향에서 만나 물거품을 만드는 곳. 지탱할 곳 없는 바닥은 어쩌면 가장 단단한 약속의 장소일지 모른다. 움직이고 흘러갈 것을 예비해 더 마음에 단단히 새겨두는 이름과 얼굴.



이날 나는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 철저히 관객의 자리를 지켰다. 풍경이 풍경을 불러내고 기억이 기억을 불러내서 자꾸만 가지 않은 장례식이 떠올랐던 것이다.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진짜 일어난 일로 기억하지 않을 거라고 믿던 시기였다. 산책하러 가자는 말을 남기고 죽은 사람을 떠올렸다가, 계속해서 울리던 전화를 떠올렸다가, 어떤 목소리를 떠올렸다가 지웠다. 다시 유리창 너머로 ‘그들’을 바라봤다. 관객과 배우가 수시로 교체되는 연극이 끝나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주위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잔해가 남지 않은 약속 장소에 다녀온 사람들. 좀전의 만남을 기억하는 얼굴들. 감았다 떴다 하며 자꾸 뒤돌아보는 눈빛이 닿을 곳 없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 부두에 정박된 배 한 채를 가리켰던 것 같다. 저기 보이는 저 배가 그때 아이들이 탔던 배와 같은 배야. 잠시 침묵. 그리고 바로 전환된 대화의 다음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날씨 이야기거나 점심 메뉴 이야기였을 것이다. 배 위에서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몇 번의 입장과 퇴장이 오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울고 웃는 사람들은 마치 만남을 연기하는 배우들 같았는데, 배에서 내릴 때까지 아무도 진짜 그/녀를 보았냐고 목소리를 들었냐고 묻지 않았다. 

<에코에코>(2023) 두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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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중간중간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기억해두었다가 글을 해체시켜 다시 이미지를 끼워넣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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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중간중간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기억해두었다가 글을 해체시켜 다시 이미지를 끼워넣는 방식.